미국출생. 처음에는 단순한 그래피티 아티스트로서 주목 받았으나 1980년초부터 뉴욕 지하철 광고판을 캔버스로 이용하여 쾌활한 코믹 이미지와 정치적인 메시지를 전달했다.
1978년 뉴욕 School of Visual Arts에서 수학했고 펑크와 랩뮤직, 브레이크댄스와 그래피티로 특징지워지는 East Village에 있는 클럽들에서 “개인감정의 공공에 대한 표출”이라는 영감을 받았다.
스피드와 명료함 그리고 간결한 선으로 자신의 에너지를 표출했고, 대담한 컬러로 그래픽 디지인에 대한 그의 관심을 보여주었다. 상업적으로도 뛰어난 감각을 보여 뉴욕과 마이애미에 아트숍을 오픈하여 성공하기도 했다.
1985년부터 에이즈(AIDS)의 합병증으로 사망하는 1990년까지 하링은 그의 에너지를 에이즈의 위험을 알리는데 집중하였다.
1980년, 단순한 윤곽선으로 그려진 수수께끼 같은 그림이 뉴욕 지하철 역 광고판에 나타났다. 디즈니의 만화처럼 사람의 마음을 끌고 Jean Dubuffet같은 예술가의 세련된 원시주의를 닮은 듯한 그 그림은 대담하고 유머러스하고 또 쉬웠다. 그 그림을 그린 사람이 바로 Keith Haring이다.
해링은 마치 어린아이들을 위한 만화와 같이 매우 단순한 선과 선명 하면서도 강렬한 색채로 대중에게 다가선다. 보다 즉각적이며 감각적인 그의 작품들은 보는 관람객들로 하여금 다시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는 듯한 착각과 친근함을 불러일으킨다.
해링은 사회운동 집단들과 자주 공동 작업을 하여 문맹 퇴치 프로그램, 인종차별 반대, 반핵 운동, 동성애자 인권운동, 에이즈 교육 등에 시간과 작품들을 바쳤다. 1988년에 해링은 그 자신이 HIV 양성임을 알게 되었는데, 투병 생활 보다는 미국과 해외에서의 공공 프로젝트의 수를 늘려가며 열광적인 작품 활동을 해나갔다. 말년에는 자신의 질병에 대해 이야기하고에이즈에 관한 인식과 활동들을 불러일으키는 데에 작품을 활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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